본문 바로가기
리뷰

영화 <자산어보>

by 김치면 2026. 1. 4.

안녕하세요 김치면입니다. 
오늘 다뤄볼 영화는 이준익 감독님의 사극 영화, 자산어보입니다. 


예전에 한 번 봤을 때엔 몰랐는데 최근에 다시 보면서 깊은 감명을 받아 이렇게 리뷰이자 찬사를 보내고 싶어서 글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저는 이 영화에 영향을 받아 제가 키우던 반려 전갈의 이름을 "창대"라고 지었던 적이 있습니다.)

설경구, 변요한, 이정은, 김의성 등등 명성이 드높은 국밥 배우분들의 열연도 물론 너무나도 훌륭하고요, 각본과 음악, 따뜻한 사람냄새 나는 옛날 모습들도 힐링되는 영화입니다. 그러나 무작정 힐링만 하느냐? 그것도 아니고 역사적인 고증에 맞게 씁쓸하고 잔혹한 이야기도 담아내었죠. 다시 봐도 잘 만든 수작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극 영화는 몇 개가 더 있는데, 관상, 남한산성, 이순신 3부작(명량, 한산, 노량)이 있습니다. 이런 작품들을 좋아하신다면 이 영화도 틀림 없이 만족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거두절미하고 함께 영화 속 조선 후기의 흑산도로 들어가볼까요? 출발~!

“이 양반은 대역 죄인이니 너무 잘해줄 생각들 말어”  
순조 1년, 신유박해로 세상의 끝 흑산도로 유배된 ‘정약전’.

호기심 많은 '정약전'은 그 곳에서 바다 생물에 매료되어 책을 쓰기로 한다.  
이에 바다를 훤히 알고 있는 청년 어부 ‘창대’에게 도움을 구하지만 ‘창대’는 죄인을 도울 수 없다며 단칼에 거절한다.

‘창대’가 혼자 성리학 공부를 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정약전’은 “내가 아는 지식과 너의 물고기 지식을 바꾸자"고 제안하고 거래라는 말에 ‘창대’는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인다.

둘은 티격태격하면서도 점차 서로의 스승이자 벗이 되어 간다.

— 자료 출처: 네이버 영화 <자산어보> 줄거리 中

흑산도가 어디인지 아시나요? 흑산은 지금의 전남 신안군의 섬 중 하나로 조선 후기 당시엔 1급 유배지로 지정된 멀고 고립된 섬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그만큼 무거운 죄를 지은 죄인들이 가는 곳이죠, 오죽하면 죄인들좀 그만 보내라는 상소가 올라왔다는 기록도 남아있을까 싶습니다. 그런 고독하고 하늘과 산 바다 뿐인 마을에 보내진 정약전은, 가거댁과 장창대라는 청년을 만나고, 그 인연들과 다시 새로운 삶을 꾸려나갑니다. 이런 이야기가 참 따뜻한 것 같아요. 절망에서 무너지지 않고 누군가와 함께 다시 살아가는 이야기. 가슴이 따뜻해집니다.

그 중 특히 따뜻한 장면을 하나 꼽아보자면, 창대가 결혼하게 되는 씬입니다. 만날 때마다 "괴기 잡으러 가냐 씨불놈아?"라고 인사하는 소꿉친구가 있는데, "겁나게 이쁘구마잉"라고 답하는 창대.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요..?
그리고 이어지는 "니 나한테 시집와야 쓰겄다." 와우.. 거 참 놀랍습니다. 그런데 이런 게 제 취향입니다. 너무 재밌습니다.
창대도 결혼하고, 약전도 가거댁이랑 결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유배지이고 언제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지만, 거기서의 삶도 여전히 삶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게 됩니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다는 말을 저는 참 좋아하는데요, 우리가 염려함으로 우리의 키를 더하게 할 수 없듯이 때로는 칠흑같은 어둠에서도 서로 촛불을 모아 의지하며 하루씩만 살아간다면 이 날도 아름다웠다고 말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모두 응원하고 싶어요! 힘들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여기, 당신의 곁에 있다는 약속. 그게 삶이고 사랑이겠죠?

아름다운 이 날들이 영원히 계속된다면 좋겠지만, 창대에겐 꿈이 하나 있었습니다.

"잘못된 관례가 있다면 바로 잡아야 하고
그중 개혁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면
나만은 그 잘못을 따르지 말아야 한다."

창대는 이 나라가 주자의 성리학 위에 세워진 나라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리학이 무너졌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죠. 그토록 놀라운 가르침이 있고, 이루어야 할 세상의 모습도 선명한 것인데, 어째서 세상은 이런 모양이란 말인가? 창대는 불만을 품고 있었습니다. 양반들이 해야 할 일은 하지도 않고 하지 말아야 할 일들만 하니까 이런 모양이란 것이죠. 그는 공부를 계속 할 수록 세상을 바로 잡아야 할 필요를 느낍니다. 신기하게도 이 짜증나는 감정은 우리의 운명이라도 되는 모양입니다. 끈질기게 우리를 부릅니다. 조던 피터슨이 질서 너머에서 언급한 것처럼 말이죠.

"당신은 그 필요에 짜증이 난다. 
정부에 짜증이 나고, 당신의 일이 싫고 원망스러우며, 동료들이 불쾌하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주변 사람들 때문에 맥이 빠진다. 
우리 주위에는 해결해줄 사람을 애타게 기다리는 일들이 있다. 

당신은 해야 할 일을 아무도 하지 않는 것에 격분한다. 
하지만 그런 격분, 그런 분노는 일종의 ‘출입구’다.
방치된 책임을 목격할 때 당신은 운명과 의미를 감지할 수 있다."

창대는 그저 출세하고 싶어서, 그저 상놈 딱지를 벗어나고 싶어서 과거 시험을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상놈으로 평생 사는 게 보통 억울한 일은 아니긴 하겠지만 단지 그런 이유는 아니었습니다. 
성리학이 무너진 이상한 조선이라 할 지라도 FM대로 고결한 학처럼 살아낸다면 이 세상이 바로 잡히리라 진심으로 믿었습니다. "영웅서사" 그겁니다. 창대는 어지러운 세상, 고통받는 백성의 편에 서는 영웅이 되기 위해 공부했던 것입니다. 어쩌면 창대도 '메시아'가 오기를 간절히 기다렸을겁니다. 그리고 스스로 그 '메시아'를 향한 소망을 잃지 않기 위해 공부를 했고 과거를 보고 관직에 오르려 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상놈의 신분과 가난함때문에 명석한 머리로도 출세해서 뜻을 펼칠 수 없었죠. 억울한 창대는 아버지를 찾아갑니다.

창대는 양반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자기 이름조차도 족보에 넣어주지 않는 바람에 과거를 볼 수 없었던 것인데, 가서 자기가 공부 열심히 했다고 말하며 양자로라도 호적에 넣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나 "난 또 어린 놈이 벌써 사서 삼경에 예기 춘추 까지 다 읽고 와서 큰소리 치는 줄 알았더니만.." 이러면서 단번에 컷 당합니다. 오늘날로 치면 서류광탈.. 서럽습니다.

우리는 스펙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스펙은 중요합니다. 스펙은 한 사람을 효과적으로 설명해줍니다. 그 사람이 관심있어 하는 것, 잘하는 것, 살아온 이력까지도 말입니다. 그렇기에 스펙은 사람을 이해하거나 평가하기에 간편하고 공정한, 다른 어떤 기준보다도 적합한 기준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비극적이게도 이 스펙'만'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기 시작할 때 재앙이 찾아온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제가 나이만 먹고 쌓은 스펙이 없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자고로 사람이란 오래 시간을 두고 곁에서 머물면서 한 두번 실수하는 것도 여러번 함께 하면서 좋은 모습 나쁜 모습 모두 겪어가며 알아가야 하는 것이지요. 사실 결혼해야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결혼 해도 충분하지 않죠, 자식까지 키워봐야 그 사람을 그나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창업가가 꿈이신 분들은 앞으로는 면접에 육아면접까지 넣어서 인재를 채용하시기 바랍니다. 농담입니다. 어쨌든 그만큼 사람은 무겁게 맞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기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저도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합니다. 제멋대로 사람 평가하고 선입견 가집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한 우리는 끝 없이 소통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창대의 행보를 보면서 세상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 느낍니다.
창대의 꿈은 관직에 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박살이 나기 때문입니다. 현실은 더 어둡고 잔혹했습니다. 개인 각각의 타협들이 모여서 구조적인 거대한 악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앞에서 백성들도 피해자이지만, 아전들도 피해자였습니다. 싸울 의지조차도, 바꿀 수 있다는 희망마저도.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위로는 목사 영감의 압박이, 아래로는 아전들의 개김이 고통스럽습니다.

환상은 깨지고 현실이 보입니다.

도대체 이 거대한 부패의 뿌리는 어디까지 뻗었을까요? 어디까지 갈아 엎어야 목민심서의, '복성'의 세상이 찾아올까요?

결국 참지 못한 창대는 아전 한 명을 골라서 반으로 죽여놓습니다. 그리고 "뜻대로 살지 못하믄 생긴대로라도 살아야지라."라는 명대사를 남긴채로 관직을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가죠. 

영화 초반부에서 약전이 '자산어보' 프로젝트를 착수하며 이런 말을 합니다.

"내가 이제까지 성리학 노자 장자 서학 가리지 않고 공부한 것은 한마디로 사람이 갈 길을 알고자 했던 것인데, 이놈이 물고기에 대해 아는 것 만큼도 알아낸 게 없지 않은가?
허니 이제부터 애매하고 끝 모를 사람 공부 대신, 자명하고 명자한 사물 공부에 힘써볼 생각이네.
사물 공부로 나를 잊어볼 생각이네."

그리고 약전은 창대가 흑산을 떠난 뒤로부터 계속 자산어보를 써내려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사실 이 연출은 알고보면 너무 소름돋는 비밀이 숨겨있습니다..

약전의 건강이 점점 악화되고 기침이 심해지는데 (정말 아픈 연기 진짜 너무 현실적이어서 더 몰입됩니다.) 창대가 백성의 고통을 마주하는 장면도 번갈아가며 나오고, 약전이 적는 책의 내용들도 나레이션으로 나옵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이 나라의 사정을 더 알면 더 알지 모르지는 않았을 약전의 시선으로 본다면 "사물 공부로 나를 잊어볼 생각이네." 이 대사가 너무 더 와닿는겁니다.

마치 이런 세상에 신물이 났다는 듯이, 그리고 창대의 의롭고 외로운 싸움의 고뇌와 괴로움을 그대로 공유하기라도 한다는 듯이 아픔을 가슴으로 느끼며 "사물 공부"에 매진하며 책을 써가다가, 손에 붓을 놓지 못한 채로 조용히 숨을 거두는 약전.. 와 진짜 소름돋지 않습니까?

영화 초반에 정조대왕이 정씨 형제들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벼슬한 선비들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 무엇인지 아느냐?  
버티는 것이야.  
사방에서 칼이 들어오고 오물을 뒤집어 써도 버티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버텨야 한다. 
알겠지?"

이런 세상에서는 그저 하루 버티고, 또 하루 버티는 것이 박수받을만한 일입니다. 뜻을 펼치는 것은 고사하고 말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돌아오는 배에서 창대 아내의 말 한 마디 입니다.

"여보, 난 역시 육지보다 흑산이 좋소"
진짜 우린 이런 사람을 아내로 만나야 합니다.

당시 창대의 심정에 상상력을 좀 가미해보자면 아마 모세가 히브리 민족을 괴롭히던 이집트 병사 한 명을 쳐죽이고 광야로 도망쳤던 그 심정과 비슷했을 것입니다. "우린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이런 느낌.

만약 그 상황에서 아내가 "여보, 딱 한 번만 눈 감고 넘어가지 그랬소. 남들 다 그렇게 사는 세상 아니오. 어찌 그런 선택을 하셨소." 라고 말했다고 상상해봅시다. 그럼 창대의 멘탈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의 괴로움은 가족들 마저도 이해받지 못한 채로 온전히 혼자의 몫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위 대사는 최고의 위로이자, "여보, 난 당신을 존중하오"라는 든든한 조력을 의미하겠죠..

이 장면의 의미를 조금 더 확장해보면 더 감동적입니다.
약전이 남긴 마지막 편지에서 창대에게 이런 말을 남깁니다.

"네 덕분에 음험하고 죽은 검은색 흑산에서 
그윽하고 살아있는 검은색 자산을 발견하게 되었다. 
창대야, 학처럼 사는 것도 좋으나
구정물 흙탕물 다 묻어도 마다 않는
검은 색 무명천으로 사는 것도 뜻이 있지 않겠느냐?"

창대가 약전이 책 이름 지을 때 흑산이라는 이름이 조금 덜 이쁘니 자산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던 적이 있는데, 이를 두고 약전이 "네가 나의 흑산을 자산으로 바꾸어 놓았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 흑산도는 1급 유배지인 고독하고 쓴맛 나는 장소입니다. 
창대와 가거댁을 만나며 약전의 음험한 흑산도가 그윽한 자산도로 변한 것처럼.
암울한 현실에 좌절하며 고향땅으로 "유배"당한 창대의 흑산도가, 가족들의 지지와 스승님과의 따뜻한 추억들로 인해 '자산'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래서 아내의 말에 "흑산이 아니라.. 자산이여"라고 미소를 띄며 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대사 이후에 멀리 보이는 흑산도의 모습이 클로즈업 되며 영화 내내 흑백이었던 화면이 컬러로 바뀝니다. 창대의 눈에 보이는 흑산이 정말 그윽하고 살아있는 자산이 된 것입니다. 너무 아름다운 마무리죠.

이제 창대의 이야기 말고도 다른 감동 포인트로 넘어가볼까요?

약전이 창대에게 "사람이 학문을 위해 있지 않고 학문이 사람을 위해 있다"고 강조하는 모습을 보이곤 하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지금 보기에는 너무 당연한 말이긴 하지만 그 당시엔 아니었나봅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양반도 상놈도 없고 적자도 서자도 없고 임금도 필요 없는 그런 세상이다." "이 나라의 주인이 성리학이냐? 백성이냐?"

저는 이 모습을 보며 이 말이 떠올랐습니다.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막 2:27)
예수님이 안식일에 이삭 잘라먹었다고 뭐라 하는 바리새인들에게 하시던 말씀인데요,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정말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였습니다.

C. 캐빈 로우의 '이 놀랍고도 새로운' 이라는 책에 초기 그리스도교가 로마의 세상을 왜 뒤흔들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소개되어 있는데요, 신기하게도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인들에게 "무신론자들"이라고 배척받았다고 합니다. 로마 뿐만이 아니라 조선에서도 그리스도교는 크게 배척받았죠. 참, 머쓱하게도 그리스도교는 어디서건 환영받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상 정약전은 서양의 종교를 믿어서 유배당한 것이 아니라, 조선의 종교를 비판해서 유배당한 것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사실 기독교는 단지 비판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단순히 새로운 종교적 의식을 추가하도록 요구하지 않고 우주의 기원부터 삶의 목적, 그리고 궁극적인 종말까지 모두 아우르는 '단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를 제시합니다. 만약 이 이야기를 받아들인다면 그 개인이 인간을 보는 눈과 세상을 사는 방식이 통째로 바뀌어버립니다.

이는 마치 "견고한 성벽으로 나뉘어 있던 도시 한복판에 거대한 광장이 생겨나, 성벽 안팎의 사람들이 아무런 조건 없이 뒤섞여 춤을 추기 시작한 변화"에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성의 질서를 유지하고 싶었던 지배층 이들에게 반가울리 없었겠죠, 그러나 억압받고 고통받는 이들이나, 인생의 가치와 의미를 잃어버린, 의사를 간절히 찾고 있는 "환자"들에겐 구원의 소식이었습니다.

마침내 지배와 억압의 세상에서 "창조주의 잔치"가 시작된 겁니다.
저는 사실 영화 보는 내내 약전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약간씩 겹쳐보이는걸 느꼈습니다. (신성모독 아니구 잠깐 들어보시길..) 왜 그럴까요? 그게 바로 예수님의 의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지구를 리틀 예수들로 가득 채우려고 하십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C. S. 루이스가 말하길, "모든 그리스도인은 작은 그리스도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목적은 오직 이것 하나뿐입니다."라고 한 바가 있습니다.

흔히 예수님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완벽한 인간상으로 평가되고는 합니다. 심지어 기독교를 싫어하는 사람조차 예수님은 좋다고 말하는 사람도 은근 많죠. 루이스는 그리스도를 "실재의 중심에서 솟구쳐오르는 능력과 아름다움의 거대한 분수"로 묘사하며, 그 분수에 가까이 갈수록 물보라에 젖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 점이 놀라운 점입니다. 저는 이를 두고 "가장 완벽한 자기계발은 역설적이게도 자기를 버리고 예수를 닮는 것"이라고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실제로 작동하는 메커니즘이기도 하고 말이죠.[^1] 

더 놀라운 점은 이 과정을 실제로 인격체이신 예수님 본인이 돕고 계시다는 점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한 분 밖에는 없다는 말도 어느 정도는 사실임을 인정하지만, 우리는 정말 예수님처럼 될 수 있습니다. 그가 실제로 그렇게 만들어 가고 계시니까요. 우리는 설령 규모는 작을지언정 예수님과 똑같은 종류의 생명을 얻게 될 것이며, 그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에서 나타나는 중입니다. 영원히 말이지요.

끝으로 심금을 울린 명대사들을 공유하고 이만 끝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엔 다른 좋은 작품 리뷰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고것을 몰라서 묻소? 
아따 목사 영감은 이것도 적다고 난리인디..
나으리, 세금이 궁궐로만 가는 줄 아요?"
— 왜 군포 많이 걷었냐고 묻는 창대에게, 아전들의 답변.

"너 다른 생각 하고 있구나?
너 공부해서 출세하고 싶지?
너 같은 놈들 때문에 너가 말하는 성리학이 요모냥 요꼴이 된거다 이놈아!"
— 창대를 꾸짖으며 약전이 한 말.

"나는 성리학으로 서양의 수리학과 기하학을 받아들였다.
성리학과 서학이 결코 적이 아니다. 함께 가야 할 벗이지.
벗을 깊이 알면 내가 더 깊어진다."
— 창대를 서학 배우게 설득하며 약전이 한 말.

"질문이 공부야 이놈아! 외우기만 하는 공부가 나라를 망쳤어!"
— 무슨 그런 것까지 묻냐고 따지는 창대에게 약전이 한 말.

"백성들은 땅을 논밭으로 삼고 아전들은 백성을 논밭으로 삼는다."
— 목민심서를 읽으며 창대가 되뇌는 구절..


[^1]: 물론 찾으려 들면 오히려 잃는다. 좋은 인상을 주고자 집착하며 좋은 인상을 줄 수 없듯이, 독창적인 글을 쓰고자 집착하면 독창적인 글이 안나오듯이. 오히려 진실을 솔직하게 말하며 (예전부터 뻔하게 등장하던 말들이라 해도) 글을 쓰다보면 독창적인 글이 나오듯이 말이다.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밍타이거 설명회  (0) 2026.06.21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더 킹덤  (0) 2026.04.20
⌈당신의 과녁⌋  (0) 2025.10.06
[방백남녀]  (0) 2025.10.04
⌈유츄프라카치아⌋  (0) 2025.09.20